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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씌여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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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낙훈 2024. 10. 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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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6월 3일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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