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자유가 보장되어있다.
하지만 자유를 맛본 사람들은 금새 속박이나 규칙의 틈을 찾아서 들어간다.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순간 목표의 상실이려나
혹은 허무함의 연속이려나.
슬픔또한 그렇다.
슬픔을 아는 사람 많은 슬프을 겪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기쁨을 원한다.
한동안 많은 기쁨을 맛본 사람은
쾌락의 끝에서 찾은 허무함속으로 빠져든다,
감정의 끝은 없다.
결국에는 그 끝에는 반대의 성질을 가진 감정이 있을뿐이다.
수평선을 따라가면 제자리도 돌아올것이고,
또한 수직선을 따라고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프도 영원히 오르는 그래프도 없기에
영원히 내리는 그래프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삶의 밑바닥을 기고 그 지층을 뚫고 내려가
끝도없는 절망속에 추락하고 있을지라도,
그 아래는 다시 하늘이 반복될 것이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좋았던 날들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좋았던 날들이 있었기에 이런 불행한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것이 참 간사한 것이 뭐냐면
불행과 슬픔을 맛볼 때에는 그렇게 기쁜 추억들을 찾아 뒤지면서도,
기쁜 현재와 즐거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떄에는 슬픔과 불행은 뒷전이다.
이 얼마나 편애스러운 감정이란 말인가.
반대가 있다면 그 이유는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피하려 한다면
그 감정은 파도가 되어 당신을 덮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가.
울고싶을 때는 울고, 웃고 싶을때는 마음 껏 웃고,
화내고 싶을 때는 뭐 당연히 떄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야겠지만
굳이 그것들을 감추려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옛날 한 댓글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 께서 물으셨다.
사람이 가장 환하게 웃을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아들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 하늘이 가장 환하게 갤 떄는 언제인지 아느냐
또한 아들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하늘이 가장환하게 갤 때는 비가그친 직후라고 하더라.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단다.
근심이나 걱정이 쌓인 얼굴에 묻어나오는 표정은
당연하게시리 걱정과 근심이 묻어있을 것이다.
가슴속에 슬픔을 모두 털어낸 사람이야말로
우리에게 환하게 웃는 무지개를 보여주지 않겠느냐.
지금 보니 전부 맞는 말 같지는 않짐나
그때 생각해보면 나에게 적잖은 감동이었던것 같다.
극성에는 이유가 있듯이
너무 나쁜 날들만 있을 것은 아니기에 오늘하루도 힘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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