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쾌락을 즐기는 가
혹은 익숙한 사람들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속삭이는가.
뭐 무엇이 되었던지 그것은 당신의 연이다.
사람이란 참 신기한 듯하다.
스스로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를 바꾸지도 못하는 데 타인을 바꾸려고 한다.
본인도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내가 돌아서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나의 연은 늘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익숙함의 편안함에 심취해 있는듯 하다.
자그마한 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고,
몇년지기 친구들과 함께 평상에 올라 앉아서 꺼내오는 시원한 수박을 좋아한다
물론 관계에서는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그것을 모두 지키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타인을 이해할 줄 알아야하고, 또 그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한다.
배려심이 있어야 하고, 타인의 말을 경철할 줄 알아야한다.
그러면서도 눈치는 있어야 하고, 또한 스스로의 생각또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이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되겠지.
각자의 가치와 관념을 내세우고 고수하는 것 또한 좋다.
그런사람들 또한 존경하는 것이,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스스로의 길을 만들고
성공의 반열에 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겉으로 보면은 그런 사람들이 더욱 멋있어 보이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려나.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sns은 나날히 발전하게 되었지만 아마 과거와 비교해보았을 때
사람의 관계는 나아지는 것이 아닌 더욱 퇴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매번 싸우고, 타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것이 옳은 말임을 아는데도, 본인의 말을 고수하고 강요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과거에 편지를 쓰면서 각자의 생각을 조금씩
전달하는 것이 더욱 괜찮은 의사소통의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절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쉽게 쓰여질지도 몰랐다.
생각이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하는 이유가 각자의 의견을 공유한다던가
더욱 나은 스스로를 만들기 위해서 라면은 굳이 손절이라는 단어를 꺼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타인을 위해서 조금은 숙이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나를 핍박하고 험담하는 사람의 악의를 향해서 칼을 뽑아다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자가 아닐까.
조금만 생각해보면은 지금 겪은 일들도 감정들도 금방 소실될 것을 안다.
그렇기에 휘발성이 높은 것들에 사라질 것들에 대해서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 아닐까.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자들은 약한 자들이 아닌 현명한 자들이고,
지혜로운 사람들일 것이다. 동등한 위치라고 한다면 굳이 내가 높이 올라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당신과의 대화를 원하고 당신 또한 나와 같은 목적이라면
누군가 허세를 부린다던가 악의를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별에 익숙해지지 말고, 만남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그만큼 이별은 각별해 질 것이고, 이별에 대해서 약하질 테지만.
이별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평생 약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음 그런 생각이 드는 비내리는 밤이다.